"언니,
오늘 새벽에도 아버지는 언니 침대의 이불을 반쯤 걷어 두셨네.
언니가 푹 자고 깨어 이불을 들추고 일어난 것처럼.
밤에는 이불을 덮어 두셔.
이불을 덮고 언니가 잘것처럼"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갈 정도로 겁이 많았는데
배가 기우는 순간 학생들에게 달려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오늘은
"~제발 돌아와 ..다시 교편 잡는 너의 모습 보고 싶다.
국어선생님을 좋아해서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다던 너...
꿈을 이뤘는데...보고 싶다."
"지금 또 어둠이 찾아온다...
나..너희가족들...친구들...지인들... 우리가 해줄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이렇게 무능한 친구여서 미안하고 또 미안해...
깜깜해져서 불끄고 잠드는 우리여서
그것도. 미안해...."
선생님은
2009년 3월 기간제 교사로 단원고에 부임하여 6년째 재직중이셨고
2011년에는 고3담임을 맡으셔서 아이들의 대학진학에도 성심성의껏 임하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생전에 자상하고 성실했으며 집안일을 거의 도맡다시피 하였답니다.
또 엄마에게는 언니같은 딸이였다합니다.
학교회식에는 꼭 부모님과 동생을 식당으로 초대하기도하였고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이 좋은 옷을 입고 계시면 봐두었다가
백화점에 가서 사와 부모님께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기울자 교사선실인 5층에 계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이 구출하기위해 4층으로 내려가 제자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학생들이 탈출을 시작하는 순간에도 본인은 구명조끼조차 입지 못한채
끝까지 학생들곁에서 학생들 탈출을 돕다가 희생되었습니다.
선생님은 5월 3일에야 구명조끼도 입지 않으신채
4층에서 발견되어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자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장영아. 오늘 야자를 했는데 많이 힘들었지? 우리 한 번 열심히 해보자. 파이팅!"
"한솔아!
이 엽서 쓰고 있는데 부끄러운듯 웃고 있는 네 모습이 떠올라^^
전학와서 많이 낯설고 힘들었을 텐데 하필 무서운 나를 만나서 더 힘들었지 ㅜ
그래도 밝게 잘 지내줘서 너무 고마워. ^^
또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해. 성적 올린 거 보면 가능성도 보이구!
지금보다 더 독하게 공부한다면 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원하는 대학에 가길 바랄게.
사랑한다."
'화장은 엄두도 못 내고 핸드폰은 자동 반납에 지각은 안되고...아직도 쌤한테서 못 벗어났어요."
"그때 선생님이 잡아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대학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을 절대 잊지 못할거예요."
"정말 수도 없이 혼나도 신기하게 선생님이 밉지 않아요.
쓴소리 해 주실 때 진심으로 우리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선생님께서 무섭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요. 선생님께는 사랑이 가득한 눈이 있어요."
이처럼 선생님께서는 때론 무섭게 때론 사랑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상담실에서는 학생들과 컵라면을 먹고, 학생생일마다 축하문자를 주고 받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한쪽으로 불러 자유이용권을 쥐어 주고,
조손 가정학생들에게는 틈나는데로 전화를 걸어 챙기는자상하신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러나,
3반김초원선생님과 이지혜선생님은 이런 숭고한 희생정신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교사라는 명분으로 순직처리가 되지않고 있다 정권이 바뀐 올해들어서야 드디어 순직인정처리 되었습니다.
이ㅇㅇ님의 자랑스러운 딸. 조ㅇㅇ님의 언니 같은 딸. 이 ㅇㅇ님의 엄마 같은 언니,
2014년 단원고 2학년 7반 담임 교사. 국어 선생님. 31세의 미혼 여성. 가브리엘라,
그리고.... 이지혜 생님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