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반 #정원석
고작 열 일곱, 여덟해를 사랑하는 엄마,아빠곁을 다녀간 아이들...
이 아이들이 생일이면 더욱 사무치게 보고픈 오늘을 맞이한 가족들...
국군장교의 꿈
국군 장교가 되어
엄마와 누나를 지켜주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아이야
엄마의 퇴근길
찻길에서 팔짱 끼어주고
누나 마중을 다녔던 아이야
비오는 날에
파지 줍는 할머니
파지 줍고 모셔드린 아이야
친구 차비 없다고
자신의 차비를 내어주고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온 아이야
16일에 친구들과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른 친구 구하러 간 아이야
늦둥이로 태어나
남을 위해 대견히 살다가
하늘로 떠난 장한 나의 아들아
하늘 나라 장교가 되어
어두운 이 나라 지키고
통일 조국앞에 우뚝 서거라
시 : 신호현
6반 정원석을 소개한 시입니다.
얼마나 개탄스러운 나라인지..위기대응책도 없는 썩은 나라인지...
원석이를 DNA가 세번이나 맞지않는 데도 다른 가족이 원석이를 데려가
이틀을 장례치르고 서야 원석이는 비로소 엄마,아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5남매의 막내아들 원석이를 부모님은 이렇게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원석이는
누나가 넷이나 있는 5남매의 막내입니다.
여자들 많은 집에서 혼자 남자라서 원석이는 엄마랑 누나들 안전을 항상 걱정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엄마와 누나들에게 세상이 험하니 호신술을 배워야 한다며 가르쳐드렸습니다.
주짓수를 배워서 엄마와 누나를 지켜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원석이는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에 마중 나와서 같이 걸었고,
찻길은 위험하다며 엄마를 길 안쪽으로 걸으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원석이는 그렇게 엄마랑 같이 팔짱도 끼고 손을 꼭 잡고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다정한 막내였습니다.
원석이는 가족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고 배려가 깊은 아이였습니다.
비 오는 날 길에서 비를 맞으며 파지 주우시는 할머니를 보고,
원석이는 함께 파지를 주워드리고 할머니를 부축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합니다.
친구가 차비가 없다고 해서 자기 차비를 주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도 원석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갑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원석이는 선실 안에서 잠자고 있던 친구를 데리고 나오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석이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10반 #이해주
해주는 언니가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막내입니다.
해주는 애교가 아주 많은 귀여운 막둥이였습니다.
맞벌이하시는 엄마가 늦게 들어오시고 언니는 학교 기숙사에 있어서 해주는 집에서 아빠하고 친했습니다.
해주가 워낙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좋아서 아빠한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였다고 합니다.
해주는 손재주가 좋아서 재봉틀을 잘 다뤘습니다.
자기 옷도 고쳐 입고, 친구들 옷도 천원, 이천 원씩 받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받은 돈으로 친구들이랑 같이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해주는 아빠한테 자기가 직접 만든 가방도 자랑하고, 친구들이 옷 리폼해달라고 난리라며 솜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해주 방에는 해주가 실 색깔대로 곱게 정리해둔 반짇고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해주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 방을 새로 꾸며주실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벽지도 조금씩 뜯고 커튼도 새로 달려고 떼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해주는 빈 방만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해주 방은 떠나기 전에 벽지를 뜯고 커튼을 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새로 방을 꾸며줄 해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주야 오늘은 엄마,아빠에게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날 이란다.
그 즐거운 나날들을 열일곱해를 누리다
이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었구나.
이 죄를 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무나도 큰죄라...
아마 열일곱해를 열일곱배는 더 큰 고통속에 지내야 이마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려나...
중략..
해주야 엄마아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도 돼,
엄마,아빠는 기쁨준 너만 행복하면돼...
사랑해 보고싶다~!"
2015년3월3일
해주의 생일날 부모님이 쓴 편지입니다.
해주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다음은
38세에 늦둥이 원석이를 얻었던 어머니 #박지민님의 글중에 한부분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치라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만 할 뿐입니다.
내가 너무 무식하게 살아서 내 아들을 잃은거 같아 엄마는 가슴을 치고 또 칩니다."
친구님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