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근이는
7개월만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세상을 만났고 그무렵 암투병중이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서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형과 아빠 중근이 세남자의 생활은 중근이가 중학교 1학년때 끝이 났습니다.
새엄마와 두살 많은 누나가 새로 생긴겁니다.
듬직하고 속 정깊은 중근이는 새환경에 금방적응하였으며
엄마. 누나의 이름을 부르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누나의 심부름에는 한걸음에 달리는 중근이였습니다.
중근이..
처음엔 이름 때문에 다가왔고, 너무 늦게 돌아와 다가왔고. 분향소에 놓인 두산베어스 야구 유니폼때문에 다가온 중근입니다.
"엄마 고백할게 있어. 엄마가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왔을 때. 나 엄마한테 내내 반말했잖아.
막 아무거나 사달라 하고.버릇없이 굴었잖아. 엄마. 나 일부러 그랬어, 나 하루 빨리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그랬어. 하루빨리 엄마 아들 되려고 그랬어,
정말이지 엄마가 그리워서 그랬어.외로워서 그랬어.
엄마 , 다시 고마워 천번 만번 고마워
짧았지만,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내 응석 내 잘못 다 받아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캄캄한 저 어둠을 뚫고 거기까지 들리게 크게 한번 불러보고 싶은 엄마 ㅡ사랑해! -중근이의 생일시 중에서."
아빠를 꼭 빼어닮은 7반 중근이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큰 덩치 만큼 운동을 좋아해 야구와 축구등을 즐겨했습니다.
중학교때는 친구들과 매일 야구만하다가 어깨 인대를 크게 다쳤습니다.
부모님은 중근이에게 야구를 그만둘 것을 종용했지만 중근이는 틈틈이 야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중근이는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 팬이였습니다.
또한 중근이는 베이스기타를 잘 쳤습니다.
아빠는 그런 중근이의 모습이 부럽고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아빠는 아들에게 "베이스 기타를 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중근이는 아빠에게 기타 코드표를 건네주며 연습하라하고 하고는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진도체욱관에 "21번 안중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걸어놓고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21번은 중근이의 반 출석 번호입니다.
부상때문에 접은 야구선수 대신에 경찰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피력하기도 했던 중근이.
덩치에 맞지않게 엄마에게는 수다쟁이처럼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했던 중근이.
동네방네 엄마,아빠 이름 걸고 외상 지고 다니던 넉살 좋은 중근이.
자주 다투고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화해하는 변덕쟁이 형과 중근이.
어리석기로 용감했던 형제사이를 늘 화해의 손을 연결해준 똑똑이 누나와의 추억등을 묻은 채로.....
긴 기다림의 끝.
날마다 팽목항 등대에 나가 중근이를 외치던 아버지의 염원에 보답하듯, 중근이는,
6월 8일 밤11시 20분에 '292'번으로 발견돼어 부모님과 누나와 형의 곁으로 돌아와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네 얼굴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냈어야 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구나. 아들이 없는 생일 파티를 하는 슬픈 시간을 보냈지.금방이라도 "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