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형 여행 너무 오래 갔었지.?
이젠 여행가지마 알았지?
형 사랑해.
나 너무 이뻐해 줬을때가 생각나.
그때 잊지 않을게........ 동생."
정무는 어릴적부터 말수가 적고 의젓했습니다. 자라면서 말썽 피운적도 엄마속을 썩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정무의 어릴적 이름은 정재입니다.
정무는 강원도 금진 외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엄마 아빠의 사정에 따라 금진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유구로. 유구에서 다시 금진으로, 경기도 일산으로,
파주로, 다시 안산으로 쉴 새 없이 터전을 옮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정재에서 정무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어린 정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와 키우기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정무는 엄마가 깨우기도전에 먼저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했고 전날 밤늦게까지 일한 엄마가 피곤해한다 싶으면 행여나 엄마가 깰까봐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엄마에게 단 한번도 뭐 사달라고 졸라본 적도, 때를 써본적도 없었으며 정도 많아서 키우던 강아지가 집을 나가
잃어버렸을 때에는 장장 삼 개월 동안 보고 싶다고 울어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잦은 이사와 전학을 거쳐 마지막으로 엄마와 외할머니를 떠나 아빠가 있는 안산으로 와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정무는 용기가 남아 있는한 누구에게도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기대지 않고 자신을 튼튼하게 지키며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정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합기도 도장에 다니며 대회에 나가기도 했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운동을 즐겼다고합니다.
고기나 통닭을 좋아했지만 운동을 많이해서 날씬한 체격이었습니다.
드럼을 두들기고 샌드백을 치며 단련했던 정무,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태울 수 있다던 하얀 페리에 올라탄 정무는 세월호 참사 6일만에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내아들 정무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다음생에 우리 다시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그땐 엄마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자.
너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네가 너무나도 착했다고 하더구나.
너무 아까운 우리정무.
많이 많이 사랑하고 너무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