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는 7반 반장입니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 아이.
해마다 학교에서 체육과목 상장을 쓸어모으고. 고1 체육대회 계주에서는 "역전의 용사"가 된 아이.
수빈이는 축구에서도 알아주는 명 플레이어 였습니다.
반장이었던 수빈이는 공부도 참 잘했습니다.
체육이 부전공 이었다면 주전공은 수학이였습니다.
새벽 네시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 던 아이였습니다.
"엄마,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뭐해줄까?"
"시골에 땅을 사줘. 강아지도 기르고 야채도 키우게"
수빈이는 엄마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게 많아서 수빈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 선생님과 은행원. 회계사를 두고 뭐가 될지를 고민하던 아이였습니다.
"짜수" "간지짜수"
짠돌이 수빈이의 별명입니다.
셈이 강했던 수빈이는 함부로 군것질을 하거나
용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통장에 넣어두고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친구들에게 "짠돌이 수빈"이 줄임말인 "짜수"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수빈이 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은 형을 무서워 하면서도 좋아했습니다.
모든것을 잘하는 형이었기에 형을 우상처럼 따랐습니다.
키 178 센티미터에 얼굴도 잘생긴 형은 공부뿐만 아니라 잘하는게 참 많았습니다
수학을 잘해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오고,
운동을 잘해서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포켓볼 동아리 활동을 하는등 정말 다재다능한 아이였습니다.
또한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수빈이는 수학여행코스를 미리 다녀왔습니다.
중 3때, 고등학교 진학하면 공부만 할거라며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고 수학여행코스도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간다고 한껏 들 떠 있었습니다.
4월 15일 수빈이 엄마는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수빈이와 친구들을 학교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그것이 수빈이와의 마지막 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수빈이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수빈이 여자친구도 세월호를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한 생존학생은 수빈이 엄마에게
" 내가 구명보트를 타고 나오는데 수빈이가 안에서 구해달라며 객실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어깨까지 감싸며 약속했었는데...."
세월호 참사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만남이 끝나고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기자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수빈이 어머니에게 다가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가족이 원하면 언제든 만나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통령의 약속은 진도실내 체육관의 TV모니터 두 대 외에는
그 어떤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수빈이 어머니는 단식투쟁부터 삼보일배,
특별법 서명운동 등 수빈이와 친구들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수빈이는 5월 1일에 엄마의 품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돼서 같이 밖에 나가서 팔짱끼고 다니면 애인 같고 정말 좋았는데....
철없는 엄마를 만나서 고생만 했는데...이제는 정말 잘해주고 싶었는데..."
친구님들
수빈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이수빈을 기억하여주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