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넓고 넓은 바다에 오색 찬란한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었던 아빠의 태몽으로 세상에 나온 홍래는
위로 형이 있는 형제중에 막내입니다,
명랑쾌활의 대명사라고 할 만큼 사교성도 좋았고 성격도 활발했습니다.
또한 레고를 할때는 천둥번개가 쳐도 모를 만큼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곤 했습니다.
[뜨거운 형제애]
엄마의 껌딱지 홍래는
연년생인 형과는 학교가는 시간을 빼고는 항상 운동을 같이 가고, 같이 잠자고, 지방에 있는 아빠가 못 올라오실 때는
전라도 광주까지 같이 다녀오는 등 마치 쌍둥이처럼 지냈습니다.
엄마에게는 옆에서 항상 웃으며 조잘대며 딸 노릇까지 해주던 다정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때면 직접케이크를 만들고 작은 선물을 하거나 깜짝파티를 해주던 의좋은 형제이기도 했습니다.
홍래는 자그마한 체구에 귀여운 외모를 자랑합니다.
학교에서도 봉사동아리 TOP에서 활동할 정도로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아는 홍래였습니다.
그런 홍래의 꿈은 의외로 이종격투기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약속]
2014년 5월31일.
원주치악체육관에서 경기 시작 15초만에 상대선수를 KO시킨 #서두원선수는경기가 끝나자 홍래형을 링위로 불러 끌어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외쳤습니다.
"나, 약속지켰다"고....
홍래는 형과 친구들과 함께 체육관을 다녔습니다.
특히 서두원선수를 좋아해 자신의 방에 사진도 여러장 붙여놨다고 합니다.
홍래와 형은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6월에 이종격투기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래는 세월호 사고 8일째인 4월 23일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배가 침몰하기 전
"형, 무섭다...살려줘"라고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홍래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동생의 장례를 마친 형래는 동생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려고 서두원선수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고
사연을 들은 서두원선수는 5월31일 경기를 이기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전 홍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으나
8일 만에 가족품으로 돌아온 홍래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착하고 친구들을 좋아했던 홍래였기에 누군가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건네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합니다.
2015년 6월에 홍래형은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이 나라를 떠나 영국에서 홀로서기에 나섰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동생 홍래를 그리워하는 글귀와 홍래생일이 세겨져 있습니다.
매월 16일이면 런던에서 현지인들과 교민들과 함께 홍래와 친구들을 위해 피켓을 들며 안타까운 형제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래가족은 세월호참사가 일어나기전 이사계획을 재작년에 실행했습니다.
홍래는 미리 이사할 집을 한 번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마치고 며칠이 지났을까 저녁에 새 한마리가 아파트 베란다 창들에 날아와 앉았답니다.
엄마가 거실을 여러 번 지나갔는데도 간간히 날개만 푸드덕거릴 뿐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더랍니다.
그렇게 오후 4시 무렵에 날아온 새는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형이 있는 방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새는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답니다.
"형, 잘있어?"
"엄마 잘 지내?"
"아빠는 회사 갔어?"
홍래생일을 하루 앞둔 2016년 홍래가족이 이사한 광주집을 찾았습니다.
주인이 없는 홍래방은 마치 홍래가 있는것처럼 온기와 체온이 느껴졌습니다.
세월호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은 모두가 이렇듯 아직 자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계십니다.
분향소에서 네번째 맞이한 생일.
영원한 열여덟살에 멈춰버린 시계바늘.
결코 끝나지 않을 가족의 고통을 느껴봅니다.
홍래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홍래의 생일을축하하여주시고 #박홍래를 기억하여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