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윤철선생님과 이근형학생은 교내 보컬부 지도교사와 학생으로 사제지간이기도 합니다.
남윤철선생님,.
선생님은 아마도 세월호가 이상하다는 것을 최초로 느낀 사람들중에 한 분입니다.
배가 이상하다고 느낀 선생님은 같은반 제자인 #최덕하에게 최초로 119에 신고하도록 하였고 제자들을 구하러 찾아다니셨습니다. 119에서 덕하의 말에 못믿어하자 선생님이
전화를 바꿔 설명 후에 다시 제자들을 구하러 뛰어다니셨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갑판위로 끌어올리고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다시 왕래하기를 세번.
그리고 네 번째 선실로 들어간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목격 된 10시쯤.
"물이 허리쯤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우리들을 챙기고 있는 선생님을 봤다.
물이 어깨까지 차오르고 허겁지겁나와 돌아보니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제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선생님은 17일 객실 후미쪽 바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이같은 헌신적인 희생으로 6반은 1반 19명 다음으로 많은 13명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안고 있었던 듯 양팔을 앞으로 내민 채였습니다.
남학생들에게는 형같고 여학생들에게는 오빠같고. 그를 보려고 일부러 학생들이 교무실을 들락거리게 만들었던 선생님이셨습니다.
남윤철선생님은
학생들에게는 목소리 좋고 잘생기셔서 "꿀성대남쌤"으로 불리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주셨고 야구모자를 즐겨쓰시며 마주친 학생들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주시곤 하셨답니다.
선생님의 제자사랑은 교무실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선생님 의자곁에는 상담의자가 하나 더 놓여있으며
제자들의 고민상담을 친구처럼 편하게 들어주곤 하셨습니다.
국민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신 선생님은 단원고에 부임 후
영어선생님으로 재직하셨으며 교내보컬부 지도교사로도 활동하셨습니다.
대학시절 "사람좋고 쾌활하며 워낙 잘생기고 사교성이 좋아
선생님이 나타나면 강의실 복도가 시끌벅적했다" 는 선생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선생님은 사고 당시에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과"에 재학중이셨습니다.
살아 생전 제자사랑의 실천과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한 선생님의 사랑을 기리고자 모교인 국민대는
북악관 708호 강의실을 "남윤철강의실"로 명명하여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으며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역시 "남윤철 장학생"을 매년 선발하여 선생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사고 이틀째인 17일에 사고해역에서 떠올라
지금은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천주교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선생님의 제자사랑을 요약한 한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나는 교사로서
너희와 더불어 살고
너희와 더불어 죽노라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너희와 더불어 살아왔듯이
너희와 더불어 죽으리라
죽음의 문턱에서
너희 한 사람 남았다면
난 기꺼이 돌아가리라
최후의 한 사람이라도
어둠에 두지 않으리라
죽음에 두지 않으리라
더 살리지 못해서
너희와 나누지 못해서
먼저가니 미안하구나.
친구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