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명의 단원고학생이 희생된 세월호참사의 이면에는 여러가지의 인연들이 존재합니다.
단원고에는 여러명의 쌍둥이 형제 자매들이 있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둘이 같이 희생된 경우는 없습니다.
승혁이는 위로 3살 많은 큰형과 쌍둥이 작은형이 있는 삼형제중에 막내입니다.
승혁이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표정과 머리모습 입는 옷까지 똑같았고 특히 살짝 눈웃음을 치면서 웃는 얼굴은 두 아이가 거울로 반사되는 모습같이 선한 표정의 승혁이였다고 합니다.
세월호참사시
다행히도 17년을 같이 자라 온 쌍둥이 작은 형은 다른학교에 재학중이여서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큰형을 좋아해서 잘 따랐고, 쌍둥이 작은형과는 친구처럼 붙어 지냈다합니다.
집안에 남자가 많아도 막내들은 조금은 여성스럽고 애교가 많은 듯 합니다.
승혁이도 마찬기지 였습니다.
엄마를 위해 커피를 타 주고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께 발마사지를 해주던 애교덩어리였습니다.
"우리는 빵이고 넌 잼이야"
엄마 아빠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가운데로 쏘옥 기어들어온 승혁이에게 빵과 빵사이의 잼처럼 중간에 끼인 승혁이를 밀어부치며 한 말입니다.
그러면 승혁이도 비명을 지르는척 하기도 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곤 했다고합니다.
승혁이는 어렸을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를 꿈꿨으나 고민끝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실내 건축디자이너가 되고자 했습니다.
승혁이네는 아빠,엄마, 세아들. 그리고 근처에 사시는 할이버지까지 모두 여섯 식구였으나 큰 형이 2014년 2월에 군입대하였고 할아버지가 2014년 3월에 세상을 떠났으며 승혁이 마저 2014년 4월16일 세월호에 탑승했다 돌아오지 못해 지금은 세식구만 남겨졌습니다.
승혁이는 할아버지의 49재인 4월23일에 돌이왔고, 자신의 생일과 작은 형의 생일날인 6월 3일에 49재 의식을 치러야했습니다.
18살에 사랑하는 동생과 뜻밖의 이별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작은 형 쭈니(집에서의 애칭),
항상 같이 입던 옷을
"미안해서 못 입겠다. 그냥 미안해" 하는 작은 형 쭈니의 마음,
군대에서도 동생과 집안이 걱정되어 날마다 전화하는 큰 형,
남은 두 형제를 위해서도 꿋꿋히 이겨 내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안고 승혁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승혁이의 봉안함에는 단란했던 가족사진 한 장이 붙어져 있습니다.
"승혁이는 영원한 내 아들이야. 가슴속에 묻은 아들이지. 이놈이 예전에는 꿈속에도 자주 나타나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통 나타나질 않아.
그래도 나타나줬으면 좋겠어. 보고 싶으니까....
부모로서 고민이 많아. 지워야 한다는 건 너무 슬픈일이야...나한테"
승혁이의 짝꿍은 #신호성입니다.
억겹의 인연
시 신호현
인연 없다고 말하지 말아요
떠났다가 생일날에 돌아오고
할아버지 49재 다시 돌아오고
죽어서도 세상을 보고
식구된 도리 할 줄 알아요
날 떠났다고 말하지 말아요
내 가족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족이 날 잊을 뿐이예요
보지 못한다 잊지 말아요
빵사이 쨈 없으면
무슨 맛으로 먹을까마는
외로운 쭈니 꽉끼어 먹어요
엄마 아빠 사이에서
그림자 친구 쌍둥이 쭈니형
자상했던 큰 헝 행복했어요
억겹의 인연으로 만나서
천만 번의 슬픔으로 떠나지만
다시 가족으로 돌아올게요
친구님들
승혁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김승혁을 기억하여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