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6반 #신호성
호성이는
태어나서 3일이 지나면서 목을 가눌정도로 4.25kg의 우량아로 태어났습니다.
호성이는 위로 7살 차이가 나는 형이 있는 형제중에 막내입니다.
어려서 걷는 것보다 말하기를 먼저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성장후에는 누군가와 조곤조곤 말하기를 좋아하였고 말 잘하는 아이,
배려를 많이 하는 아이, 자기 인생에 고민을 많이 하는 아이였습니다.
호성이의 꿈은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원고 진학후 1학년 담임이셨던 국어선생님이 학생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학생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고
재미있게 수업을 하셨던 영향이 컷다고 합니다.
호성이는 중학교때까지 매주 네권의 책을 읽던 독서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짓기와 시를 쓰는것을 좋아했습니다.
또 호성이는 엄마에게 자신에 대해 자주 물었다고 합니다.
" 엄마, 날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없다면 어땠을거 같아?"
그럼 엄마는
" 우리 아들은 공기야, 엄마가 숨쉴수 있는 공기! 아들 없으면 엄마는 못 살거 같아"
답하곤 했습니다.
엄마에게 살갑고 다정했던 호성이는 빌라의 반장을 맡고 계신 엄마가 저녁시간에 관리비를 받으러 다니시면
뒤에서 후레쉬를 비춰주며 졸졸 쫒아다니며
" 엄마 조심 조심"하기도 했고, 자기가 아팠을때 엄마가 감기 기운이 있다면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그래" 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집근처 올림픽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워 최상급 실력까지 갖춘 호성이를
안산시에서 수영선수로 발탁하려고 까지 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가만히 있으라" 고 했습니다.
호성이는 세월호 침몰후 16일째인 5월 2일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 : 8반 #전현우
"모든일에 최선을 다하자"
현우의 책상위에 쓰인 현우의 좌우명입니다.
현우는 세살터울 여동생이 있는 두남매의 맏이입니다.
여동생을 잘 챙겨주는 어른같은 아들이고 집안의 기둥이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항상 여동생 손을 잡고 다녀서 현우는 동네에서도 동생 잘 돌봐주는 오빠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집에서도 여동생 챙겨주는 일이라면 뭐든 척척 알아서 했습니다.
현우는 고기나 튀김같은 기름진 음식보다 담백하고 신선한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과일이라면 종류불문, 뭐든지 좋아했다고 합니다.
엄마를 위해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기도 했고,
세탁기안에 다 돌아간 빨랫감이 있으면 너는 게 당연했습니다.
조기축구팀의 감독이자 축구심판 자격증까지 있는 아버지는 늘 현우곁을 지키는 조언자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같이 목욕탕에 가고, 옷을 사주고 축구화를 사주며 아빠와 같은 취미를
갖기를 원했으나 현우는 축구보다는 또레 아이들처럼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현우는 엄마한테도 뭔가 사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대학에 진학하면 아르바이트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너무도 일찍 철이 들어버린 현우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아빠와 함께 산 운동화의 끈을 매면서 현우는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이 신발을 신고, 더 넓은 세상을 보길 윈하시겠지... 현우는 운동화를 신고 단단히 조였습니다.
두 발에 딱 맞는 운동화가 가뿐했습니다.
"동생아 오빠 간다. 엄마,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나
현우는 4월 24일에야 부모님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우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리움
시 : 신호성
부모 부모 부모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것은 쉽지만
되는 것은 어려운 그것 불려지는 것은 쉽지만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그것 부모
아플 때나 슬플 때나 든든한 모습인 아버지
힘들 때나 화날 때나 따뜻한 모습인 어머니
항상 같은 모습인 뿌리 부모님
뒤에서는 울적하지만 술 한잔에 웃어 버리는
우리 아버지
옆에서는 도와주지만 힘든티 안내고 드라마에 웃어버리는
우리 어머니
언제나 자식들이 걱정할까 티 안내는 부모님
항상 부르지만 다가가기 힘든 그이름 부모
가끔은 공원에 있는 벤치처럼 자식에게
기댈수도 있지만 자식이 힘들어 할까
바로 일어나 버리는 그런 그런 부모
자식이 자기 때문에 맘 상할까 언제나
걱정하는 그런 그런 부모 그런 그런 부모
친구님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