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_저_이제_출발해요_잘_다녀올께요"
초등학교 2학년부터 엄마를 대신해 자신과 동생 삼남매를 길러주었던 큰 고모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라 불러줬던 아이.
"네"
"할 수 있어"
를 입에 달고 열심히 살던 "긍정대장"준형이
주말이면 복지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성당에서는 학생회 활동 을 하며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보조하는 복사를 맡았습니다.
준형이에게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동생들에게
"나중에 알바해서 너희 용돈을 주겠다"며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었고,
가족들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운전면허를 따서 "전용기사"되어 주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
*지금을 즐겨라*
준형이의 좌우명입니다.
준형이의 꿈은 카톨릭대 간호학과에 진학하여 남자 간호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일곱차례나 수술을 하셨고 작은 고모님이 간호사로 일하시는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준형이는
동생들과 작은고모님댁 조카들을 끔직히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집에서 작은 고모님댁까지 5~6km를 40~50분여를 걸어와 만나고. 돌아갈 차비를 줘도 받지 않고 걸어서 돌가가기도하고, 피자,치킨등 먹거리가 생기면 꼭 가족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챙기기도 했다합니다.
착하고 사랑 많은 준형이는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1학년, 어느날 준형이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작은 고모직장에 데려와 거리극축제 보러간다며 고모님께 애교를 부리며 용돈을 졸랐습니다.
그때에 고모님에게 비친 여자친구는 바로 3반 #깨박김시연 이였습니다. 물론 잠깐 사귀는 관계였구요.
99.23%
몸에 있는 점의 위치가 같고 유전자가 99%이상 일치 한다하여 손에 묵주 쥐어주고 입관까지 끝냈던 준형이 장례식,
세번이나 DNA가 일치한다던 국과수,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더높은 수치의 가족이 나타났다며 달려온 국과수,
준형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가족들은 다시 팽목으로 내려가 다시 일주일여의 기다림끝에 비로소 준형이를 만날 수 있었고 복시옷을 입힌후에 장례를 치렀 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의 장례식을 치러야했던 가족들...
준형이를 잃은것도 억울한데 정부의 허술한 관리체계까지 경험한 아버지 #장훈님은 정부와 싸우셨고
2018년,2019년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진상규명에 힘쓰셨습니다.
다음은 작은 고모님이 작년에 저에게 보내주신 준형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준형아...
보고싶은 사무엘...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걸까?
너의 목소리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뽀뽀해줄께요... 개념있게 다녀올께요...하고 간게 그냥 어제인 것 만같다...
준형아..고모보다 먼저 세례받고 성체 모실때마다 고모에게 부럽죠? 라며 놀리던 너의 웃는 모습이 그립다...고모가 세례받는날 우리준형이가 복사서 주었는데...
지금은 주님곁에서 가족들 지켜보고 있겠지?
일년중 항상 이날이되면 몇일전부터 사고 싶은걸 이야기했었지...비싸지도 않은것들인데 ...생일날되면 꼭 하나는 사줘야되는 거라고 고모에게 애교부리던 우리사무엘...
큰고모에게 "엄마'라 이야기못하던 니가 무엇을 느낀걸까? 세월호에 타던 그때 "엄마 다녀올께요" 라는 말에 눈물 흘리던 큰모고 얼굴도 생각나고...
여자;친구 생기면 피자에 치킨에 작은고모는 친구니까 소개해줘야한다고 데리고오던 너의 모습도 떠오르고... 오늘밤에 만날수 있을까? 너를 보내고 하루하루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너를;위해 그무엇도 해줄수없는 작은고모인 내가 꿈속에서라도 만날자격은 되는걸까? ...
보고 싶다 그립다...아니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냥 미사안에서..기도안에서 ... 그때만이라도 만나자...사랑해...》
4월30일에 돌아온 준형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