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이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 자매 중 맏딸입니다.
활달하고 명랑한 동생에 비해서 유민이는 차분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고, 마음 맞는 친구와 깊게 사귀었습니다.
유민이는 특히 같은 반 #김슬기 학생과 단짝이라서, 학교에 갈 때도 같이 가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도 저녁까지 같이 놀곤 했습니다.
유민이는 치킨하고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명절 때면 유민이네는 친척들이 다 모여서 할머니댁에서 고기 파티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고기를 구워 주시고 유민이는 아빠 등뒤에 꼭 붙어서 아빠가 등 뒤로 넘겨서 먹여주는 고기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친척들은 유민이가 아빠하고 사이가 좋아서 다들 부러워하셨다고 합니다.
평소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아빠와 친척들 앞에서는 애교도 부리는 귀염둥이 딸이었습니다.
유민이는 공부를 아주 잘 했지만, 대학 등록금이 걱정돼서
진학보다는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유민이 아버지가 직장에서 정규직 전환되셔서
대학 등록금 걱정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유민이는 그제야 대학에 가고 싶다고, 가고 싶었다며 속을 털어놓았습니다.
유민이는 수학을 특히 잘 해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은행원이 되는 것이 장래 계획이었습니다.
유민이는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옷 사주려고 데리고 나가시면 유민이는 할인 판매하는 가판대에서 제일 저렴한 티셔츠를 딱 한 장만 골라올 정도로 알뜰했습니다.
세뱃돈이나 용돈도 모두 저금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유민이는 용돈 필요 없다고, 자기가 모아 놓은 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걱정이 돼서 5만원을 주셨습니다.
유민이는 참사 8일 만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민이 지갑 속에는 엄마가 주신 5만원과 자기가 모은 용돈에서 가져간 만원,
이렇게 6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민이 아버님은 지금도 유민이가 남긴 그 만원을 지갑 속에 소중히 넣어 가지고 다니신다고 합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큰 딸을 잃고 광화문에서 4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세계에 세월호참사를 알렸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 건 투쟁을 하였습니다.
보수 언론과 일베들의 숱한 음해와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오직 유민이와 친구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광화문에서 겨울 풍찬 노숙과 연대를 위해 전국의 투쟁현장을 누비시면서 아이들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 하셨었습니다.
아래 편지글 "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해" 라는 동생 유나의 글을 읽고 꿈속에서도 울었다는 "못난아빠"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이쁜 언니에게.
언니한테 편지 쓰는 거 처음인 것 같아...
언니 책상에 엄마가 글 많이 남겼더라고..
난 이제 고작 3번 왔는데... 진짜 나쁘지?
너무 미워하지 말고... 가끔 언니 생각 무지 많이 나서 혼자 울곤 해.
엄마 울 때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
오히려 엄마 힘들게 하고...
언니 몫까지 내가 잘해야 하는데.. 가끔씩 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해...
언니가 나보다 착하고 듬직한데 왜 더 나쁘고 더 많이 놀아본 내가 아니라 언니야?
하늘이 잘못 알고 있나봐. 그치?
언니가 더 똑똑한데... 언니도 더 놀아보고 더 많은 친구 사귀어보고 해야 하는데...
언니가 엄마 옆에서 더 힘이 되어줄 것 같은데..
내가 많이 미안해... 언니 대신 가고 싶고 그래..
이 편지 언니가 봤으면 좋겠다! 난 언니가 내 언니여서 너무 좋고~
다음에도 언니가 내 언니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 자주 들릴게. 오늘은 분향소에 꽃도 놓고 왔어.
언니 좋아하는 치킨 사서 갈게!!
많이 보고 싶다.. 많이 많이 사랑해
이상하게 엄마랑 있을 땐 눈물이 잘 안나면서 혼자 있으면 눈물 많아지더라..
다음에 또 올게! 사랑해
사랑해
2015.03.24 343일 유나가"
학교동아리 활동으로 볼링부에서 활동했던 유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유민이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김유민을 기억하여주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