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초예아델라
초예야! 초예야!
"우리 큰딸" 하면 "응, 왜? 엄마, 아빠" 이렇게 대꾸해주던 딸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가 없구나.
엄마, 아빠가 힘든 것 같으면 우리 큰딸이 "엄마, 아빠 사랑해" 하고 안아 줬는데,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우리 딸이 보이지 않는구나."
"쵸쵸"
초예는 여동생 둘에게는 엄마같은 존재였습니다.
맞벌이로 바쁜 아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와 간식을 꼬박꼬박 챙겼고 공부도 가르쳤습니다.
엄마에게는 친구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함께 장을 보러 다녔고, 엄마와 함께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초예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몸이 많이 허약했다고 합니다.
낯을 좀 가리는 편이었지만 친해지기만 하면 장난도 잘 치는 밝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초예의 꿈은
어릴적부터 발달장애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크면서는 "취업이 잘된다"며 꿈을 간호사로 정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 15일밤,
"일찍 잔다" 며 엄마와 전화 통화 한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됐습니다.
초예는 세월호 사고가 난지 10일째였던 4월 25일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초예의 생일을 축하하여주시고 #김초예를 기억하여주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