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이는
2남1녀중에 둘째입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속을 크게 썩인 일도 없고 모는 일을 혼자 알아서 잘하는 조용하고 착한딸 이었습니다.
엄마 생신이나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수경이는 "효도쿠폰"을 발행했는데 안마해주기, 청소해주기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수경이 어머니는 생신때 수경이 친구들한테서 생신축하문자를 받곤했는데 알고보니 수경이가 친구들한테 부탁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수경이는
늘 주위사람들을 배려하고 돕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국제구호활동가가 되어 외국에 나가서 어러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수경이의 꿈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났을때 수경이는 4월16일 오전 8시 46분에 엄마한테 "잘놀다 오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지난주 416기억전시관에서 열린 금요일엔 함께하렴에서 수경어머니가 직접읽으신 수경이 시입니다.
《푸른 눈사람》
광덕산자락 허리가 끊겨
푸른핓 안산바다는
눈이 시리다
소나무꽃
송이마다
피어린 꽃눈을 여는데
봄눈 녹은 지
오래도록
늘 한 자리
가을까지 한 자리
눈물 못 꼭대기에
푸른 눈사람
옥상에서
맑은
눈을 씻는다
차마 씻지 못해 눈을 감는다
수경아 주르륵 주르륵
희미하게 번지다 만 네 얼굴이
아프고 힘든 별
은하수에 흠씬 젖어
여기서 시린 허리
쉬었다 가렴
푸른 눈사람 두 팔
봉긋한 두 가슴
으스러지게 안아나보자
아련한 내 사랑아
수경아
수경아
환장할 내 딸 수경아
수경이는 참사후 엿새뒤인 4월 22일에야 "107"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품에 돌아왔습니다.
수경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 9반 #진윤희
윤희는
의젓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맛벌이를 하는 엄마와 아빠의 속을 쎡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늘 알아서 자기일을 했던윤희,
윤희의 꿈은
세무사나 회계사가 되고싶어 했습니다.
옷이나 신발을 사달라고 조른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유난히 작은 입으로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오는 길에
무거운 책가방을 엄마가 들어주려 해도, 엄마 힘들다고 한 번도 맡기지 않았던 착한 딸 이었습니다.
고생하는 엄마, 아빠 생각해서 운동화 한켤레로 바닥이 다 닳을 때까지 신으면서도 불평 한번 하지 않던 속 깊은 큰딸이기도 했습니다.
늘 낡은 운동화 한껼레만 신고 다녔기에
보다 못한 아빠가 새운동화를 사줬답니다.
윤희는 이 운동화를 신고 기쁜 마음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윤희는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6일 만인 4월 22일, 엄마 아빠 동생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윤희가 가져갔던 휴대전화와 가방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사준 새 운동화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2016년 2월,
그동안 목포해경에서 안산 분향소로 옮겨진 유품들 속에서 윤희가 끌고 갔던 케리어를 찾아 품에 안고 통곡하시던 윤희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동거차도 인양작업현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긴 한 숨을 지으시던 아버님의 슬픈 모습도 떠오릅니다.
윤희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엄마는 인천항 부두에 설치된 CCTV 영상에서 윤희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윤희는 통화를 하며 캐리어를 끌고 세월호를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윤희의 메모장에는 엄마, 아빠, 동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적혀있었답니다. 윤희는 가장소중한 가족과 친구들과 이별후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열흘전,
윤희할아버지께서도 긴투병끝에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장손녀윤희곁으로 떠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