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모형 제작, 4년만에 침몰원인 밝힌다
[한겨레]
“역사적인 날입니다.” 4·16가족협의회 장훈 진상규명분과장과 정성욱 선체인양분과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00km 떨어진 바헤닝언에 위치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세월호 리본과 ‘0416’ 숫자가 박힌 노란색 모형배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때부터 세월호 침몰·침수 모형시험을 계획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세금 도둑’이라는 오명을 덧씌우며 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포기했었다. 참사 발생 거의 4년 만에 침몰 원인을 밝혀줄 모형배를 마주한 두 아빠는 아픔과 감격이 교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동수가 여기 있었어요.” 단원고 희생자 동수군의 아빠 정성욱씨는 왼쪽 머리 부분을 가르켰다. “우리 준형이는 여기죠.” 준형군의 아빠 장훈씨도 모형배의 오른쪽 부분을 어루만졌다. 두 아빠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304명을 품고 속절없이 가라앉던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체조사위)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은 22일부터 26일까지 네덜란드 바헤닝언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마린은 세월호 크기를 약 25분의 1로 축소한 모형배를 제작해 대형 수조(길이 170m, 너비 40m)에 띄워놓고 무게중심, 화물량, 화물이동, 타각 등을 바꿔가며 자유 항주 실험을 벌일 계획이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뒤 왼쪽으로 빠르게 기울어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날 모형배를 언론에 처음 공개한 프로젝트 책임자 빅토르 페라리는 “8주간 모형배를 제작했고 2주간 내부 전자기계장치를 장착했다. 유가족들이 세월호 리본과 ‘0416’ 숫자를 전달해줘 모형배에 이를 부착했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는 세월호를 인양한 뒤 수개월간 내부 화물량과 무게중심 등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데이터값을 측정해왔다. 마린과 선체조사위는 지난 17~19일 시뮬레이션 조건(데이터값)이 제대로 설정됐는지 점검했고, 22일부터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선체조사위원인 장범선 서울대 교수(조선공학) 등 선체조사위 관계자 6명이 참여하고, 유가족 2명과 4·16연대 활동가 장은하씨가 참관한다. <한겨레>는 이번 시뮬레이션 일정을 동행 취재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원인은 지금껏 공식 확인된 바 없다.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참사 한달 뒤인 2014년 5월15일 선원 15명을 기소하며 △세월호 선원의 조타 실수 △청해진해운 임직원의 화물 과적 △우련통운의 부실 고박(고정)에 따른 화물 이동을 사고 원인으로 꼽지만, 법원은 조타기나 프로펠러 등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알 수 없다며 ‘선원의 조타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해양연구소 마린은 복원성 값을 바꿔가며 자유항주 실험을 수십 차례 진행해 세월호가 변침할 때 급격히 기울어지는 상황을 재현할 예정이다. 복원성이란 배가 기울었다가 원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말하는데,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도입된 뒤 무리하게 증·개축하면서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위험한 배가 됐다. 세월호 시뮬레이션을 총괄하는 헹크 봄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지는데 복원성과 타각도, 화물이동 등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마린은 1932년에 네덜란드 조선업계가 설립했지만 이후 독립적으로 운영돼 왔다. 심해예인수조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조선업계 요구로 특수 연구 실험실을 잇따라 세웠다. 그동안 9900여개의 모형배와 7400여개의 프로펠러를 제작해왔고 현재 375명이 일하고 있다. 세월호는 마린이 제작한 9929번째 모형배다. 앞서 1994년 852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스토니아 호’ 침몰 사고 등 세월호와 비슷한 침몰사고도 10건 가까이 시뮬레이션한 바 있다. 바헤닝언(네덜란드)/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http://v.media.daum.net/v/20180123161616066 |